스위스 여행 1 - 아이거글레처
뮌헨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이른 아침에 조식을 먹고 바로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
짐부터 정리한 후, 소박한 아침식사를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간다.
이제는 이런 단촐한 아침식사가 좋아졌다.
딱딱한 빵과 햄,치즈,잼, 커피 정도만 있어도 충분히 훌륭하다.
아침의 하늘과 공기가 매우 맑다.
호텔에서 뮌헨 기차역까지 걸어서 대략 900미터 정도이다.
캐리어가 있어서 조금 망설여지는 거리지만, 오랫동안 기차를 타야하기에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플랫폼 번호를 미리 확인한다. 08:54 기차로 우선 취리히로 가야한다.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어서, 기차에서 먹을 점심거리를 사러 간다.
가장 만만한 맥도널드에서 맥모닝 같은 것을 테이크아웃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별로 신속하지 않았고, 결코 친절하지도 않았고, 표정도 좋지가 않았다.
그래도 뭐 맥도널드니까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또 한번 긴 여정의 기찻길에 오른다. 뮌헨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바깥 풍경이 점점 시골스러워진다.
취리히에서 한번 열차를 갈아타고 그린델발트라는 곳으로 다시 향한다.
기차 안의 바깥 풍경만으로도 이제 스위스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역시나 관광객.. 특히 등산복장을 한 사람들이 꽤나 많다.
다른 유럽 지역보다 한국 사람이 유독 쉽게 눈에 띄는 것 같기도 하다.
기차 안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스위스의 풍광에 압도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린델발트 역에 도착했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성수기 중에서도 극성수기에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대략 700미터의 거리에 캐리어까지 끌고 갔다.
오랫동안 기차에 앉아있어서, 걷고 싶다는 그럴싸한 핑계도 있었다.
해가 매우 강한 편이어서, 조금은 힘들었지만, 둘러쌓인 산들을 보면서 금방 호텔에 도착했다.
글레처가르텐이라는 호텔에서 숙박을 한다.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이라 일찌감치 예약했었고, 다른 건 다 볼 건 없고, 객실 테라스에서 보는 뷰가 환상이다.
맞은편 건물의 지붕이 좀 걸리적 거리긴 했지만, 시선의 각도만 조금 틀면 전혀 상관없다.
상상했던 것 그대로의 풍경이었고, 상상 이상으로 기분이 째진다.
너무 조용해서, 차가 지나갈때의 소음이 오히려 좀 거슬린다.
아직 숙소 근처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사람들이 스위스 스위스 하는지 알 것 같다.
진짜 확실히 클래스가 다르다.
그동안 너무 도심 여행에 치우쳐 있었었나 보다.
객실에 에어콘이 없어서 처음엔 매우 당황했지만,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땡볕에서는 더워도 건조해서 그런저 그늘에만 들어오면 또 서늘하다.
스위스에서의 첫날은 그냥 COOP이라는 마트에 가서 간단히 먹거리 사와서
객실에서 먹는 것으로 했다.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다음날부터 스위스의 산을 제대로 느껴보자.
에어콘 없이도 잠을 너무 잘잤다. 간단하게 씻고 아침에 조식을 먹는다. 이번 조식 역시 비용에 포함되어 있다.
창가에서 해가 잘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그린델발트 터미널이라는 곳에서, 아이거 익스프레스 케이블카를 타면, 융프라우로 갈 수 있다.
내가 사전에 구입한 스위스 패밀리카드로는 커버가 안되는 지역이라, 별도의 융프라우 패스를 사야했는데,
융프라우까지는 안가려고 한다.
스위스에서 꼭 가야한다는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 오히려 가고 싶지가 않았다.
융프라우 바로 전 역인, 아이거글레처에서 내려, 반대 반향으로 하이킹을 할 예정이다.
스위스는 교통수단 이용에 있어, 어린이 무료/할인 혜택이 제법 큰 편이다.
아이와 함께 간다면,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을 것이다.
친철한 아저씨의 설명과 함께 무사히 티켓팅을 마치고, 케이블카에 탄다.
다시 한번 절경을 감상하며, 20분 정도 올라간 것 같다.
해발 2320미터의 아이거글레쳐 역에 도착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 딸랑 둘만 남겨진 기분이다.
극도의 고요함과 미친 경치를 선사한다.
역에서 내려 바로 볼 수 있는 이 경치가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다.
나의 발걸음 소리, 숨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날씨마저 환상이다.
너무 좋아서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 감당이 안된다 이 기분이.
왜 이 곳에서 더 오래 있지 않았는지... 서둘러 내려온 것이 후회가 될 정도이다.
뭔가 이 곳과 어울리는 음악이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걸...
중요한 것은 아직은 정말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소리가 안들린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
보통 사람들이, 스위스의 풍경은 사진으로 담아내질 못한다고 하는데,
그 말은 절대 진실이다. 절대 담아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해도 보통... 사진은 실제보다 좀 더 미화되기 마련인데, 사진을 진짜 너무나도 못 찍었다.
현실감각이 점점 사라진다...
이런 조형물은 오히려 없어도 되는데.. 그냥 철거하는 것을 건의하고 싶다.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이라, 하이킹의 난이도는 beginner 수준이다. 딱 나를 위한 길이다.
진짜 단점이 하나도 없다.
남들이 강추하는 스위스 여행에 왜 나는 작은 의심을 품고 있었을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건데.
대략 40~50분 정도 걸어,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뭐라도 좀 마시자.
엄청나게 비싸도 마실려고 했는데, 별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대신 양은 좀 적었다.
멋진 풍경을 무아지경 상태로 걷다가, 생각치도 않게 맥주까지 마시게 되었다.
다음 코스는 클라이네 샤이덱 -> 멘리헨으로 가는 길이다.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다시 한번 너무나 흥분된다.